가자고
카테고리
작성일
2025. 5. 12. 22:05
작성자
흰다리새우

 

 

 

 쏴아아

 

 

 경선이 세차게 터져나오는 물 사이로 붉게 물든 손을 넣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물살에 씻겨져 내려간다. 경선은 손을 비벼 남은 자국을 닦아냈다. 점점 핏물이 희석되더니 세면대는 다시 투명한 물줄기만 흘려보낸다. 끼익. 수도꼭지를 잠그고 경선은 고개를 들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바라본다. 얼굴에도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의 손길 그대로 다섯개의 선이 왼쪽 뺨을 가로지르고 있다. 경선은 물기가 맺힌 손끝으로 핏자국을 더듬었다. 그가 제게 손을 뻗어 어루만지며 하던 말을 되새긴다. 

 

 괜찮아요 

 

 문장의 끝이 물음표일까 온점일까. 너무나 궁금하지만 그가 어떤 대답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게 침묵이라 할지라도, 경선은 해일에게 대답을 직접 들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살아서 깨어나더라도 묻지 않을 것이었다. 묻지 못할 것이었다. 

 

 애초에 살 수 있을까. 살아야지. 제발 살아줘야지. 핏자국이 마지막 흔적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경선은 다시 물을 틀고 볼을 벅벅 닦아냈다.

 

 

 

 

 

 

 복도에 모인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성규와 인경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중이었고, 쏭삭과 요한은 코를 훌쩍이며 수술방 앞을 맴돌았다. 수술 끝날 때까지 시간 걸릴 테니까 다들 눈 좀 붙이세요. 화장실에서 나온 경선은 의연하게 말했다. 누구보다 힘들 사람이 경선일 텐데 그들이 어떻게 눈을 붙일 수 있을까. 대영은 일단 경선을 의자에 앉혔다. 검사님. 검사님이야말로 눈 좀 붙이십쇼. 며칠동안 그놈 쫓느랴고 제대로 못 주무셨잖습니까. 경선은 대영을 올려다보았다. 맞아. 그놈. 무언가 번뜩 떠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구 팀장님. 죄송한데 수술 끝나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경선은 정신없이 복도 반대편으로 향했다. 어디가십니까, 검사님. 검사님? 박 검사님!

 

 


 

 

 현행범으로 갇힌 범인을 마주한다. 파리한 몰골이 퍽 인상적이다. 경선은 철창을 사이에 두고 범인에게 묻는다. 

 

 김해일 신부가 너한테 무슨 말 했어. 

 

 범인은 픽 웃는다. 

 

 신부다운 말.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가 경선을 거슬리게 한다. 경선은 철창을 발로 걷어찬다. 금속이 뎅-하고 울리는 소리가 퍼진다. 

 

 형량 추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평생 감방에서 썩어빠지게 해줄 수 있는데. 검사한테 칼질 한 번 당해볼래? 

 

 범인의 표정이 굳어간다. 경선은 쭈그려 앉아 범인에게 가까이 다가오라 손짓한다. 

 

 딱 한 번만 다시 묻는다. 신부님이 뭐라고 했어. 

 

 ... 기도. 

 

 무슨 기도. 

 

 세상의 불의가 점점 짙어진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탄을 물리친다, 죄인도 하느님의 자식이니 기도하겠다 뭐 그런 말. 

 

 그리고. 

 

 아, 주님의 딸을 살려달라는 말도. 

 

 ... 

 

 나야말로 묻고 싶네. 신부랑 무슨 사이야? 

 

 기도말고 다른 말은. 

 

 없었어. 신부가 한 말은 그게 다야. 

 

 경선은 어금니를 깨문다. 일어서서 범인을 아래로 깔본다. 

 

 다음에 볼 때도 반말하면 바깥공기 못 마실 줄 알아.

 

 


 

 

 늘 그랬다. 해일의 행동은 누구보다 빨랐고, 나머지는 뒤늦게야 그의 행적을 쫓아가며 이유를 알아갔다. 해일에게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고 이유는 납득 가능한 범주에 있었다. 그래도 김해일이었기에 불안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였기 때문에 생겨난 불안감은 그를 향한 믿음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못 들은 채 LA에서 서울을 거쳐 부산으로 가던 날의 심정도 이러했다. 이번엔 또 뭔데. 의문과 불안만 한 뭉텅이, 의문을 해결해줄 답은 오직 신부. 묻기도 따지기도 했지만 설명을 듣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고 결국 경선이 부산에 간 까닭은 오로지 김해일 하나때문이었다. 

 

 내가 얘기 안 했나? 

 

 안했어요. 아무것도, 단 하나도. 그러고 보면 나도 미친 것 같아. 

 

 전철을 타고 오며 느꼈던 불안감과 답답함은 해일의 얼굴을 보자마자 물에 씻겨 내려가듯 사라졌다. 상연이에게 있었던 일과 부산의 마약 문제도 경선의 의문을 단숨에 해결해주었다. 단지 찌끄러기같이 작은 찝찝함이 경선의 마음 한 켠에 남아있었다. 경선은 그것을 김해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차정도로 여겼다. 김해일과 자신은 다르니까. 나도 날 잘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다 이해해. 하느님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려나.

 

 

 

 

 이번에도 경선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전문 살수들과 싸워서도 이기는 그가 왜 칼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었는지. 왜 경선에게 괜찮냐는 혹은 괜찮다는 말을 남겼는지. 부산에서처럼 직접 묻지도 못 한다. 그렇다면 흔적에서 답을 얻을 수밖에. 김해일의 뒤를 쫓는 것은 늘 해오던 일이었으니 어렵진 않을 것이다. 수술대 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해일을 생각하며 경선은 네비게이션에 찍힌 최근 검색 목록을 눌렀다.

 

 

 

 

 

 경선은 외딴 건물을 다시 찾아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귀신이 나올 법한 무서운 폐가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 보니 외벽에 때구정물이 줄줄 흘러 더럽다는 인상만이 가득했다. 경찰 둘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기에 경선은 가방을 뒤적거려 공무원증을 꺼냈다. 내부로 진입한 경선은 곧장 3층으로 향했다. 구두가 또각거리는 소리가 계단 전체에 울려퍼졌다. 계단 출입문을 열고 진입한 기다란 3층 복도의 콘트리트 벽에는 오래되어 갈색으로 변색된 핏자국이 드문드문 남아있었다. 경선은 습관처럼 핏자국을 슥 훑어보았다. 손가락 끝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음에도 기분이 나빠 옷에다가 손을 닦아냈다. 쭉 따라걸어서 도착한 복도 끝 왼쪽 방. 아까 경선이 갇혀있었던 보안실이었다. 경선은 문고리가 부서져 이미 열린 문을 더 밀어 제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안실 안에는 못해도 스무 개는 되는 모니터들이 건물 곳곳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까 봤던 광경과 별다른 점은 없었다. 경선은 그중 하나의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모니터 화면은 본래 주차장으로 만들어진 지하 공간을 비추고 있다. 좋지 않은 화질 너머로 바닥에 고인 피웅덩이가 보였다. 경선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갖을 파고 들었다.

 

 

 

 

 

 

 

 

 

 니가 약쟁이들 대장이냐? 

 

 기절한 대영을 뒤로 숨기며 경선이 말했다. 

 

 약쟁이 새끼들 비겁한 건 알아줘야 해. 어떻게 사람 뒤통수를 후려갈겨. 

 

 뒤통수를 친 건 내가 아니라 검사님. 경고를 못 알아들은 것도 박경선 검사님. 

 

 경고? 아~ 난 살인 협박을 너~무 많이 들어와서 이젠 귀가 잘 안 들려. 

 

 오해가 있나본데 난 검사님 안 죽여. 그 경찰이랑 신부만 죽이려고. 

 

 범인이 입술을 비죽였다. 경선은 대영의 옷깃을 그러쥐고 뒤로 한껏 밀어냈다. 

 

 신부도 왔네? 

 

 범인이 경선의 뒤로 눈길을 주었다. 경선도 힐끔 뒤를 돌아보니 모니터 속에서 새까만 형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음, 경찰은 나중에 하고 일단 신부부터. 

 

 범인은 부하에게 눈짓을 보내고 보안실을 나갔다. 

 

 쾅! 철커덕.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된 경선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해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씨 왜 안 받아. 김해일! 받으라고.

 

 

 

 왜 대영과 둘이서 그곳에 있었나 생각하면 별 거 없이 단순했다. 이주 전쯤에 약쟁이들 사건을 쫓다가 우연히 마주쳤고, 목표가 같아서 그들은 공조를 시작했다. 경선과 대영은 손발이 잘 맞았으므로 공조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구담성당에까지 화가 뻗쳤다. 일이 터진 것은 경선이 주일미사를 드리러 갔을 때였다. 성당 뒷마당에서 불이 피어올랐고 한창 미사중인 성전 근처까지 불길이 퍼져갔다. 다행히 행인이 빨리 신고한 덕에 불은 금방 꺼졌고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경선의 휴대폰에는 명백한 경고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날 잡으면 네 주변 인간들도 위험할 것이라고. 

 

 김해일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분노가 너무 극에 치달으면 도리어 차갑고 이성적이 된다고들 하지 않나. 딱 그 모습을 한 김해일이 범인을 제 손으로 잡겠다며 눈에 불을 켰다. 경선도 마찬가지였다. 건드려선 안되는 곳을 감히. 검사생활을 하며 목숨에 위협받는 것쯤이야 이젠 익숙해진 일이었지만 이번 건은 얘기가 달랐다. 놈이 원하는 건 사건 종결이겠지. 종결은 개뿔이다 이 자식아. 경선은 대영과 그의 팀원들을 옆에 끼고 범인의 흔적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해일도 같이 하겠다며 만사를 제치고 쫓아다닐 준비를 했지만 경선이 말렸다. 민간인은 빠지세요. 이 한마디에 해일은 차분함을 잃어버리고 길길이 날뛰더니, 잔뜩 토라져선 홀로 어디론가 쏘아다녔다. 

 

 온갖 밀항 루트를 막기 위해 경선은 영장을 들고 직접 쳐들어가는 것은 물론, 덴마크산 검을 들고 깡패무리에게 달려드는 일도 서슴치 않고 해냈다. 경선은 세상 어느 검사가 영장 들고 손수 찾아가냐고 대영에게 생색을 냈다. 대영은 경선의 다크서클을 보고선 생색 더 내도 되겠습니다 라고 답해주었다. 

 

 그런데 신부님은 왜 빼신 겁니까? 성당도 큰일날 뻔했잖아요. 

 

 그러니까 더 빼야죠.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대영은 경선의 말에 쉽게 수긍했다. 수긍은 했지만 경선 몰래 휴대폰을 보는 일은 계속했다. 

 

 아, 신부님이 나 걱정할 텐데. 

 

 아시면 연락 좀 하시죠. 

 

 연락하면 또 난리칠 거 아녜요. 자기도 끼워달라고. 벨라또 사명도 아닌데 그럴 순 없죠. 

 

 가만보면 검사님이 신부님 걱정 제일 많이 하신다니까요.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야죠. 에휴.

 

 

 

 

 

 

 

 

 

 

 지하로 내려간 경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짙은 혈향이 아직 나가지 못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살 거야. 그러니까 볼 수 있어.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경선은 다시 눈을 뜨고 지하공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출입문 바로 앞에 선 경선의 발밑으로 피가 고여있었다.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해일이 경선의 품에 안겨있던 곳이었다. 경선은 그 흔적을 밟지 않기 위해 위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리고 바닥의 붉은 자국을 따라 걸어갔다. 구두를 질질 끌며 걸어갔을 해일의 모습이 머릿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졌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가빠져 도중에 멈춰선 경선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의자를 휘둘러 보아도 문은 흠집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기다란 손가락에는 생채기가 여기저기 생겨났다. 경선은 더 단단한 물건을 찾기 위해 책상 위를 헤집었다. 그러다가 모니터 속에서 해일이 그새 지하로 내려간 범인과 마주하는 것을 보았다. 범인은 해일보다 체구도 작았고 격투실력이 있을 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불안했다.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가만히 서있는 해일과 범인은 무언가 대화를 나누었다. 경선은 빨리 나가서 도와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두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대영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문고리를 내리쳤다. 쾅, 쾅. 큰 소리에 정신이 조금씩 드는 대영이 얼굴을 찡그렸다. 문고리가 조금 헐거워지자 경선은 총을 고쳐잡고 몇 번 더 내리쳤다. 쾅, 쾅. 경선은 숨을 고르며 다시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때 경선이 본 것은 배를 부여잡고 피를 흘리는 해일이었다.

 

 

 

 

 

 

 

 

 

 가장 피가 많이 고여있는 곳에 다다른 경선이 cctv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하느님. 보고 계시다면 제발 신부님을 보살펴주세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경선은 알고 싶었을 뿐이다. 해일의 행동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으니, 이유만 알아내면 다 해결될 것 같았다. 그가 살아나리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많은 피를 흘리고도 해일은 잘 버틸 것이고, 병상에서 거뜬히 일어난 그가 자신에게 잔소리를 할 거라고. 김해일의 흔적이 김해일은 괜찮을 것이라 대답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경선이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불안과 의문은 여전히 한 쌍을 이루어 경선의 발밑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경선의 의문은 아직도 김해일이었고, 답을 가진 사람도 오로지 김해일이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탄 경선은 휴대폰 화면을 켜 연락이 오진 않았는지 확인한다. 아직 수술이 끝나지 않았나보네. 경선은 핸들에 고개를 묻었다. 괜찮을까. 괜찮겠지. 괜찮아야지 그럼. 모니터 화면 속 피를 흘리던 김해일을 머리에서 지운다. 하느님이 지켜주시리라 믿어요. 목걸이 끝에 달린 십자가를 쥐고 기도를 하던 경선은 문득 범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 주님의 딸을 살려달라는 말도.' 일부러 모르는 척 했던 단서였다. 그렇지만 이젠 무시할 수가 없다. 경선은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경찰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때, 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인은 구대영이었다.

 

 

 - 수술 잘 끝났고 이제 회복실로 들어간답니다.

 

 

 

 

 

 

 

 

 

 

 구 팀장님 머리는 괜찮아요? 저 나이트헤드인 거 모르시는구나. 대영은 붕대를 칭칭 감은 머리 뒤쪽에 손을 가져다 대며 신부님께 한두 번 당한 뒤통수가 아니라 괜찮다는 가벼운 농을 던졌다. 

 

 "신부님이랑 그동안 무슨 연락 주고 받았어요?" 

 

 대영은 흠칫하여 몸을 움츠렸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나 고민하는 표정을 짓길래 경선은 다 알고 있으니 그냥 순순히 불라고 말했다. 

 

 "검사님 위험한 일 하실까봐 그냥 어디서 뭐 하는지 정도만... 저도 경찰입니다. 민간인한테 수사기밀은 안 알려줘요." 

 

 그럼 그렇지. 따라와서 지켜봤을 김해일을 생각하면 기가 찼다. 왔으면 도와주던가. 덴마크 검 휘두를 땐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말이야. 아니, 안 도와줄 거면 계속 모르는 척이나 하지 오늘은 왜 끼어들어선... 경선의 침묵이 길어지자 대영이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이었다. 

 

 "우리도 진짜 거기에 범인 있을지 모르고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신부님은 어떻게 알았는지 빨랑 튀어나오라고 전화도 하고 메시지도 보냈더라고요. 메시지 막 확인하는 순간에 뒤통수를 빡! 맞는 바람에 검사님이랑 갇혀있었지만요." 

 

 "하여튼 빨라. 검사랑 경찰 체면이 말이 아닌데요?" 

 

 그니깐요. 대영은 허허 웃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경선은 미소지으며 대영의 어깨를 툭 건드린다. 그 신부가 어디 보통 신부에요. 

 

 "뭐 다른 말은 없었고요?" 

 

 "어, 검사님 걱정 엄청하셨습니다. 성당에 불 났을 때 말이에요. 검사님 위협받은 걸 직접 눈으로 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고 하시면서 제 멱살을 잡고 흔드는데, 몰래 연락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변명할 필요 없어요. 신부님이랑 나 사이에 껴서 팀장님만 고생했지 뭐." 

 

 "고생도 알아줘야 제 맛이라더니 맞긴 맞네요. 하루에 열댓번씩 물어보는데 귀찮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여튼 신부님이 엄청 걱정하신 건 진짭니다."

 

 

 

 

 

 

 

 일반 병실로 옮겨진 해일은 잠이 든 상태였다. 깨어나려면 조금 걸릴 수 있다고 전해들은 경선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두에게 식사부터 하고 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신부님 깨어나셨는데 다들 비실거리면 되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본인은 배가 고프지 않아 조금 있다가 먹겠다며 해일이 누운 침대 옆 의자에 풀썩 앉았다. 혹여 깨어나면 바로 연락을 주라는 인경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경선은 해일의 곁에 남아 자리를 지켰다.

 

 

 가습기가 내뿜는 뽀얀 수증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직도 눈을 감고 있는 해일이 숨은 잘 쉬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경선은 의자에서 내려가 무릎을 꿇고 해일의 침대와 비슷한 높이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천천히 가슴께가 오르락내리락하자 경선은 안심하여 얼굴을 이불에 파묻었다. 다시 일어날 힘도 없어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해일을 지켜보았다. 맨날 걱정만 시키고. 신부님이 내 수명 10년은 깎아먹었을 거야. 경선이 해일의 손 끝을 톡 건드렸다. 

 

 해일이 움직였다. 그는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경선은 다급히 해일을 불렀다. 신부님, 신부님 정신이 들어요? 해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감는다. 느릿하게 눈동자를 굴려 잠시 주변을 확인하던 그가 경선을 알아보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경선의 뺨 위로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했으면서 그는 경선을 향해 손을 올렸다. 뺨에 살포시 닿은 손길에는 걱정이 담겨있어서 경선은 울음을 더욱 참을 수 없었다. 해일이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을 문질러 닦아내지만 그 위로 눈물이 다시 맺혔다. 해일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친 경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한 말이 물음인지 대답인지 경선도 몰랐다. 김해일 당신도 그랬겠구나. 날 걱정하는 당신에게 해줄 말이 이거밖에 없구나.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었으나 중요하지 않았다. 김해일은 깨어났으니까. 결국 답은 해일에게 있었고 온전히 그를 이해하는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경선은 그저 살아있어 다행이라는 마음 하나로 해일의 손을 꼭 붙잡았다. 해일은 가늘게 뜬 눈으로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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