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고
카테고리
작성일
2025. 5. 10. 21:35
작성자
흰다리새우

 

* 시즌 2 이전으로 생각하고 씀 

* 천주교 잘 모릅니다.... 틀린 설정이라면 이해 부탁 드립니다...

 

 

 

 

- 쿠구궁!

 

 

 모두가 잠든 새벽녘, 번개가 스테인드 글라스를 뚫고 성당 내부를 환히 밝혔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성당 안에는 도미노 마냥 줄지은 의자 사이로 베일을 쓴 머리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빛은 금새 사그라들었고 천둥소리가 사라진 공간에는 한순간의 고요함이 내려앉아 유일하게 남은 인간의 목소리만이 희미하게 울렸다.

 

 

"김해일 새ㅋ, 아니.... 김해일..."

 

 

 한낱 인간의 목소리는 바로 세찬 폭풍우 소리에 묻혔다. 그러나 기도는 여전히 계속 되었다.

 

 


 

 

 구담성당의 일과는 평화롭게 시작되었다. 평일 미사를 마치고 나온 해일은 오랜만에 갖는 평범한 일상을 즐기기 위해 앞마당에서 맨몸으로 체조를 시작했다. 불과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고, 아침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나온 악마들의 면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기분이 상쾌해진 그였다. 팔다리를 쭉쭉 펼쳐 혈액순환을 시키니 더할 나위 없이 몸과 정신이 말끔했다.

 

 

"신부님, 일도 다 끝났는데 난 왜 불렀어요."

 

 

 대영이 뻗친 다리를 모으며 불평했다. 다리찢기는 평생가도 못하겠네, 쯧쯧. 해일은 혀를 차며 그와 등을 맞대고 허리를 굽혔다. 대영의 다리가 공중에 붕- 떠올랐다.

 

 

"다 끝났으니까 불렀지. 평일에도 미사 좀 드리라고. 으잇차!" 

 

"솔직히 말해봐요. 체조 같이 할 사람 없어서 불렀죠. 으아아!"

 

 

 대영의 등에 해일의 무게가 온전히 실리자 대영은 힘없이 무너졌다. 바닥에 아직 빗물이 남아서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낙법으로 안전하게 착지한 해일은 대영에게 힘 좀 주라고 성을 한 번 내고 다시 그와 등을 맞대었다.

 

 

"어으, 축축해. 근데 박 검사님이랑 어제 뭔 일 있었어요?" 

 

"영감님? 아니, 아무일도 없는데." 

 

"그래요? 근데 왜 그러지." 

 

"왜. 뭔데." 

 

"그 있잖아요. 장검. 어제 밤에 그거 들고 다니더라고요. 다 끝난 마당에 그건 왜 꺼냈냐 물으니까 신부님 이름 말하면서 한 판 뜨러간다고 했는데. 안 떴나 보네요?"

 

 

 해일은 두팔로 본인의 몸을 감쌌다. 뭔데, 나 뭐 잘못했어?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하나씩 짚어보았다. 저녁에 연락받고 오토바이 타고 영감님 사택 가서... 그 자식들 잡고... 그 사이에 자유가 된 대영은 작은 목소리로 알아서 잘 해결해보라고 말하며 슬금슬금 도망쳤다.

 

 


 

 

"해일, 해일, 그놈의 해일!"

 

 

 경선은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다가 기사 옆으로 뜬 붉은색 글씨를 보고 분노했다. '남부지방 해일 경보'

 

 

"누구는 선 지키려고 온갖 애를 다 쓰는데, 누구는 눈치도 없이 다정하게 굴기나 하고 말야! 아 스트레스."

 

 

 김해일. 신부님인 주제에 그렇게 잘생길 필요는 없었다. 경선은 괜히 영롱하게 빛나는 그의 얼굴때문에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이 짜증났다. 미술품처럼 감상만 하면 되는데 난 왜 자꾸 이러냐고! 김해일에게 문제는 그놈의 얼굴뿐만 아니라 목소리에도 있었다. 꿈꾸듯이 달콤하고 나긋한 음성은 청각적으로 아주 심한 자극이었다.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자면 어떠한 본능이 튀어나와서 고통, 고초, 고역, 고난을 거듭한 시련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것뿐이랴. 잘생기고 목소리 좋으면 됐지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성격도 좀 순해지고 다정해져서 경선의 심장 네비게이션에 혼선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건 경보야. 해일 밀려오니까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지라는 경보.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몸싸움이라도 하려 들고 온 엑스칼리버가 눈에 띄었다. 어쩌다 보니 검찰청까지 끌고 왔는데, 진짜로 쓸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어제는 그냥 회까닥 돌아서 그런 거고. 내가 미친 거지. 경선은 한숨을 푹 내쉬며 어제 잡아들인 나쁜놈들을 어떻게 구워삶을까부터 생각해보기로 했다.

 

 

 해일은 괜히 스산하여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아침에 구대영이 한 말이 자꾸 거슬렸다. 영감님이 한 판 뜨러오면 진짜 무서운데. 몇 시간째 어제 일을 복기해 보았지만 책잡힐 건덕지가 아예 없었다. 벼랑 끝까지 몰려 경선을 협박하러 온 놈을 잡는 건 그리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경선은 구대영이 증거품 위치를 찾을 때까지 일부러 시간을 끈 것이었고, 평생 책상돌이로 살아온 놈이라 경선이라도 주먹 한 방이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단지 그가 급하게 달려온 것은 혹시 모를 일말의 위험성 때문이었다. 원래 그렇게 비실해보이는 놈들이 마음이 급해지면 눈 앞에 있는 상대가 검사고 뭐고 상관없이 뭣도 모르고 날뛰기 때문에 다칠 수 있었다. 그의 예상이 맞아들어가서 그놈은 악을 쓰며 경선에게 의자를 휘둘렀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경선은 차분하게 의자를 피하며 장검쪽으로 향해갔다. 한 방에 기절시켜주마. 그러나 경선이 밤마다 복면쓰고 담장을 뛰어넘어 길러온 칼솜씨를 뽐내기 전, 적절한 타이밍에 해일은 사택 현관문을 열고 쳐들어갔고 날라차기 한 방으로 일은 간단히 수습되었다. 

 

 여기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 이후는 경선의 손목이 살짝 부었길래 병원에 같이 간 것밖에 없다. 다행히 심하게 다친 건 아니었다. 치료받고 바로 검찰청에 간 줄로만 알았는데 장검은 또 언제 챙겼대.

 

 

"너무 바빠져서 빡쳤나? 하긴 그럴 수 있지."

 

 

 그저 뭔지 모를 분노를 가라앉히길 바랐다. 이럴 땐 기도가 답이었다. 영감님을 보듬어주시옵소서.

 

 

"아, 신경쓰여.... 악! 신경을 왜 써!! 기도, 기도."

 

 

 

 반면에 경선은 손목 아대가 신경쓰였다. 타이핑하는 것도 살짝씩 통증이 느껴져 불편한데 갑갑하게 아대까지 하고 있으려니 일할 맛이 안났다. 이제 퇴근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괜찮겠지. 경선은 냅다 아대를 빼버리고 자유를 느꼈다. 김해일이 어제 빼지말라고 단단히 당부를 해두었지만 그게 뭔 상관이랴. 내가 싫다는데. 하여튼 국정원 출신 아니랄까봐 어디 다치면 척척박사처럼 알려준다. 손목을 직접 꺾어보며 괜찮을 거라 말해주는데, 자기가 의사도 아니고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지. 안 괜찮았다. 그리고 본인 몸이나 챙길 것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경선은 책상 서랍에 있는 흉터 연고를 꺼냈다. 언젠가 해일에게 난 눈썹 근처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어서 눈에 거슬렸다. 이거 주는 건 상관없잖아. 내가 주겠다는데.

 

 


 

 

 사람들이 많이 빠지고, 거의 마지막 즈음이 되어 경선은 고해성사 방에 들어갔다. 수녀님에게 어제 물어봤을 땐 오늘 김해일은 고해성사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뭐 어딜 처리하러 간대서 오전에 바쁘실 거라고 전해 들었다. 뭘 처리하러 가는지는 안 물었다. 들으나마나 또 사명이겠지. 그래서 투데이's 고해성사 신부님은 한 신부님이란 말씀이다. 그래도 눈치는 보여서 사람이 최대한 빠지고 나서야 들어갔다.

 

 

"성부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어라...? 무언가 이상했다. 한 신부님의 목소리가 저렇게 저음이었던가. 경선은 창틀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을 흘끔 쳐다보았다. 오똑한 콧날과 짙은 눈동자, 단단한 어깨... 저건 김해일이었다.

 

 

"..."

 

 

 뭐야. 해일은 조용한 경선의 눈치를 보았다. 혹시 나한테 아직 화났나? 물론 고해성사 시간에 그런 걸 신경쓰면 안 되지만 경선은 저와 같은 성직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누구한테 고해하느냐도 신경쓰일 수 있겠다 싶었다. 해일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고해하시죠." 

 

"... 고해성사를 본 지 3개월이 되었습니다."

 

 

 오늘 바쁘다매!! 경선은 소리 치고 싶은 걸 참았다. 내가 누구때문에 고해성사를 하는데.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냥 기도 열심히 안해서 고해하러 왔다는 말을 해도 되었지만 기도는 열심히 드려서 이렇게 말하면 거짓이었다. 그럼 뭐라고 하지?

 

 

"성찰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아멘."

 

 

  해일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성찰부터 하고 다시 오라고. 이러면 되겠지. 경선은 베일을 벗고 다급히 나갔다. 

 

 해일도 급하게 따라나섰다. 어차피 영감님이 마지막 신자라 상관없었다. 열심히 도망치는 경선을 넓은 보폭으로 따라잡았다.

 

 

"왜 하다 말고 나가요?" 

 

"아직 성찰이 부족해서요." 

 

"혹시 나 때문이에요?" 

 

"왜? 내가 왜 김해일 때문에?? 꺄아하하하! 나 가요~!" 

 

... 

 

"저러니까 더 무섭네."

 

 

 경선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수녀님의 부름에 해일은 자리를 떠났다.

 

 

 

 

 늦은 회포를 푸는 시간이었다. 경선이 아주 작살나는 칼부림으로 나쁜 놈들을 기가 막히게 쳐넣어 마무리 지은 날이었다. 대영과 요한, 쏭싹도 사제관에 옹기종기 모여 그간 있었던 일을 신나게 풀기 시작했다. 요한이 구대영의 장 컨디션을 소리로 알아챈 것부터 수녀님이 한 신부와 연기하다가 걸린 이야기, 경선이 해일의 멱살을 잡고 철천지원수지간인 척 한 이야기까지 나누며 와글와글 웃음이 터져나왔다. 해일은 그들과 함께 웃다가 바깥에서 빗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잠시 빠져나왔다. 창문을 하나씩 닫으며 밖을 살펴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다들 우산 안 챙겨왔을 텐데, 성당에 우산이 몇 개 있더라. 

 

 경선도 연락을 받고 잠시 차에 갔다. 분명 나올 땐 이슬비 정도였는데 노트북으로 메일 하나를 보내고 나니 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졌다. 빗소리 하나는 쥑이네. 경선은 누구든 우산 좀 가져와 달라고 전화를 걸려다가 포기했다. 그냥 헤드에 머리를 대고 시끄러운 빗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비웠다. 아까 수다 떨 땐 시끄러운 게 좋았는데. 지금은 시끄러워서 더럽게 짜증나네. 비가 언제 그칠지는 모르겠다만 짜증나는 감정이 비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도리어 마음이 편해졌다. 밖에서 보는 구담성당은 참 성스러웠다. 저기만 들어가면 내 죄가 너무 부끄럽단 말이야. 그렇게 멀리서 성당을 보던 찰나에 해일이 창문을 닫고 다니는 것이 보였다. 제일 성스럽다, 김해일. 경선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그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왠 전화래. 나 필요해요?" 

 

"저번에 못한 고해성사요. 지금 하려고요." 

 

"지금? 성당 갔어요?" 

 

"밖이요."

 

 

 밖? 비가 엄청 쏟아지는데 무슨 밖... 해일은 마지막 창문을 닫으려다가 정말 밖에서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경선을 발견했다. 저 영감님이 미쳤나? 휴대폰에 대고 비 다 맞게 뭐하는 거냐고 소리를 빽 질렀다. 해일은 바로 성당으로 뛰어가서 우산 2개를 챙겼다. 그리고 하나를 펼쳐서 빗속으로 들어갔다.

 

 

"영감님!"

 

 

 경선은 달려오는 해일에게 휴대폰을 가르켰다. 해일은 달려오는 와중에 폰을 귀에 갖다대었다.

 

 

"거기 멈춰봐요." 

 

"왜요. 빨랑 우산이나 받아요." 

 

"멈추라고."

 

 

 맞다. 영감님 나한테 화났지. 해일은 급하게 뜀박질을 멈추었다. 우산 위로 우두두두-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전화기에서 귀 떼고 내 목소리 들리는지 확인해봐요."

 

 

 해일은 폰을 든 손을 내렸다. 경선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김해일 똥멍충이!!!"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대충 웅얼거리는 느낌은 알겠는데 뭐라는지는 모르겠다. 해일은 갸웃거리며 다시 전화로 말을 옮겼다.

 

 

"하나도 안 들려. 뭐라고 한 거에요?" 

 

"됐어요. 그럼. 나 고해성사 할게요?"

 

 

 이게 무슨 고해성사. 어이없지만 경선이 하고 싶은대로 따라주었다. 그는 다시 손을 내렸다.

 

 

"나는 김해일을 좋아한다!"

 

 

 고요속의 외침도 아니고. 아니지. 그건 입모양이라도 읽을 수 있는데 지금 해일의 눈에는 비와 박경선의 실루엣밖에 안 보였다.

 

 

"내가 미친 x이다!!"

 

 

 경선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하늘에 대고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해일은 경선과 '나 돌아갈래~' 외치는 설x구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혹시 나에게 말 못할 죄라도 지었나? 해일은 입을 틀어막았다. 설마 회개에 실패했나. 영감탱이가 또 무슨 악의 무리에 들어갔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근데!... 나는 이대로도 좋아요. 신부님이랑 사람들이랑 왁자지껄 지내는 거."

 

 

 경선의 팔이 스르륵 내려갔다. 회개의 시간인가. 해일은 우산을 내려놓고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영감님에게 축복을.

 

 

"하느님께서도 이정도는 좀 봐줘요! 나도 더 노력할게! 신부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볼 때까지 그냥 옆에 좀 붙어있을게요!"

 

 

 해일은 짧은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다. 아직 경선은 고해중이었다.

 

 

"이 말 한 번 하기 되게 어렵네. 성찰도 했고 다짐도 했으니까 고해성사 끝! 하느님 됐죠?!" 

 

"아이 진짜 뭐래는 건지 하나도 안들리네. 다 했어요?!? 감기 걸려어!!! 그만 들어가자!!!"

 

 

 경선도 마찬가지로 해일의 목소리는 안 들렸다. 그래도 해일이 열심히 팔을 휘적였기에 무슨 뜻인지는 알아먹었다. 해일은 우산을 주웠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가 경선에게 내밀었다. 시원해요? 아~주 속시원해요. 됐네 그럼.

 

 

 

 쫄딱 젖은 해일과 경선을 본 사람들은 아니나 다를까 깜짝 놀랐다. 한 신부님과 수녀님은 수건과 담요를 급히 챙겨왔다. 물방구 치고 오셨어요? 쏭싹은 요한의 배를 치며 바보돼지새끼. 라고 질책했다. 물방구 아니고 물장구. 대영이 대체 뭐 하고 왔길래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돌아왔냐고 물으니 해일은 구대영의 입을 수건으로 막았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 영감님. 옷 갈아입고 가요. 그러고 가면 감기 걸려." 

 

"괜찮아요. 집 가까운데요 뭐.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다들 또 봐요~"

 

 

 경선이 손을 흔들었다. 담요를 들고 있던 수녀님은 '이거라도 덮으시지...' 라고 했지만 워낙 발이 빠른 경선에게 닿지는 못했다. 멍하니 있다가 해일이 수녀님이 든 담요를 채어갔다. 잰걸음으로 아직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경선을 따라잡았다. 영감님! 해일이 경선의 등에 재빨리 담요를 덮었다. 그리고 남은 부분을 앞쪽으로 둘러맸다.

 

 

"춥다니까. 아대도 빼지 말랬더니 그걸 못 참아서 빼고. 말 참 안 들어." 

 

"그거 알아요? 신부님 가끔가다 되게 밉다." 

 

"혹시 아까 그런 얘기 했어요? 나 밉다고?" 

 

"네. 너무너무 싫어서 하느님께 용서 좀 구했습니다. 왜요." 

 

"이렇게 대놓고 할 거면 아깐 왜 빗속에서 했대?"

 

 

 팔까지 꽁꽁 싸매서 경선의 상체가 애벌레처럼 되었다. 운전 어떻게 하라고? 아차. 해일은 다시 담요를 풀어냈다.

 

 

"싫어도 얼굴은 빛나네. 물에 젖으니까 더 잘생겨지셨어. 결심했어요. 나 앞으로 신부님보다 잘생긴 사람만 꼬시려고요" 

 

"하! 영감님 눈이 너무 높네. 그러다 평생 연애 못하는 수가 있어요." 

 

"그럼 평생 김해일 신부님 얼굴이나 뜯어먹고 살죠 뭐~" 

 

"신부한테 그게 할 소리야?"

 

 

 못 할 소리는 아까 실컷 했어요. 속으로 생각한 경선은 괜스레 찔려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데. 나도 평생 영감님 보고 살아야하는 거잖아." 

 

"왜요. 평생 신도 하나 있음 좋지~?"

 

 

 경선은 안주머니에서 흉터 연고를 꺼내어 해일에게 넘겼다. 그러곤 검지 손가락으로 그의 눈썹을 가리켰다.

 

 

"자. 이건 신부님 얼굴을 위해 주는 거에요. 고운 얼굴 예쁘게 쓰라고." 

 

"정말 일관성있다니까." 

 

"미사 때 또 봐요, 신부님." 

 

"빗길 조심해서 가요."

 

 


 

 

 일요일 미사시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해일은 신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느때처럼 요한과 쏭싹도 왔고, 대영도 참석했다. 미사 시간이 가까워지자 해일은 준비를 하러 들어가야 했다. 오늘은 안젤라 자매님이 안 오시나? 수녀님이 말하자마자 짜잔 하고 등장한 경선이 당찬 아침인사를 건넸다.

 

 

"다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안젤라 자매님." 

 

"신부님이랑 수녀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그때였다. 성당 근처에서 환한 빛이 내리쬐었다. 뭐지? 사람들 모두 빛을 향해 돌아보았다. 해일도 들어가려다 말고 빛이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성가가 들려왔다. 오, 하느님. 성당쪽으로 다가오는 저 분은... 성스러움이 느껴집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인가... 아잇. 해일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빛은 저 남자의 얼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너무나 홀리하여 주변 사람들은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가냘프지만 부드럽고 단단한 얼굴선에 뚜렷이 자기주장하는 콧대와 세상을 놀라게 할 눈망울. 경선도 홀리함에 적셔서 입을 벌렸다. 세상에. 저 얼굴이면 우리 신부님보다...

 

 

"워후." 

 

"... 자매님 여기 성당인 거 알죠?" 

 

"네네~ 알다마다요~" 

 

"내 말 못 알아들은 거 같은데?" 

 

"전 들어가보겠습니다. 하하하!" 

 

"영감님?"

 

 

 경선은 해일을 뒤로 한 채 홀라당 성당으로 들어갔다.

 

 

 미사가 끝나고도 경선은 경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성당을 나가며 경선은 자꾸만 자비로운 웃음을 지었다. 해일은 그런 경선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리고 해일은 그 은혜로운 얼굴의 남성이 있는 방향으로 콧소리를 냈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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