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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 5. 12. 22:08
작성자
흰다리새우

 믿음 

 * 죽음 소재 주의

 

 

 누가.

 

 

 사지가 일터였던 김해일 요원에게 죽음은 진부한 것이었다. 언제든 총에 맞아 비명 하나 내지 못한 채 숨을 거둘 수도 있고, 내가 쏜 총알에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사라질 수도 있었다. '적은 죽이고 아군은 살린다.' 피아가 생명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고민했던 스물여섯 살의 김해일은 단순명료한 한 줄의 원칙을 완전히 받아들일 순 없었지만, 용납했다. 진부한 죽음은 임무 수행에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1명의 아이들이 폭발에 휘말린 순간. 그때부터 김해일에게 죽음은 진부하지 못했다. 죽어야 할 사람은 무고한 아이들이 아니었다. 상급자의 면상에 주먹을 내리꽂으면서, 죄의식 없는 그자가 쏜 총알에 맞으면서 그는 자신의 영혼을 죽였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더라면 살았을 생명들을 생각하면 죽음은 너무 아득하기도, 너무 쉽기도 하였다.

 

 

 

 김해일은 고뇌했다. 아이들이 아니라 내게 와야 했던 것. 내게 아직 오지 않은 것. 언제든 오면 받아들일 것. 결국 오고야 말 것. 죽음은 나의 것.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명 때문에 어떤 생명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면 그것은 전부 저의 몫이었다. 실제로 턱밑까지 차오른 죽음의 순간들은 모두 해일을 향했다. 그런 순간에도 김해일이 두렵지 않았던 건 다소 미련해 보이는 한 가지 생각 때문이었다. 

 

 내 죽음으로 모든 것들이 해결되기를. 해결되지 않는다면 누군가 그 뒤를 이어서 꼭 끝내주기를. 

 

 죽음을 받아들일 생각은 있었으나 죽음을 믿지는 않았다. 하느님의 뜻과 저를 뒤이을 누군가를 믿었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종국에는 해결이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김해일에게 죽음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박경선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어떻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누군가 그 뒤를 이어서 꼭 끝내주기를. 

 

 해일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 속. 남은 일을 끝내줄 사람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건 박경선이었다. 박경선이라면 언제든 자신의 뒤를 이어 끝을 내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없네. 

 

 해일은 하얀 국화꽃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박경선의 부재를 깨달은 순간이었지만 감정이 요동치진 않았다. 심정에 변화가 없다는 말보다는 운동회로가 끊겼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그는 메마른 움직임으로 바닥에 떨어진 하얀 꽃잎을 주웠다. 

 

 영감님이 죽었다고. 어제까지만 해도 피닉썬을 외치던 사람이 죽었다고. 나는 어떻게 살아있지. 박경선이 죽었는데, 그럼 나는. 

 

 힘없는 꽃잎을 상 위로 얹으며 그는 이영준 신부를 떠올렸다. 전부를 잃어버렸던 5년 전의 김해일은 무너졌지만 완전히 무너질 수 없었다. 슬픔과 상실감,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의문. 그때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느낌이 조금 달랐다.  

 

 모든 인과관계가 선명했다. 진실은 간단하다. 아주 평화롭던 어느 날. 경선은 단지 저보다 사탄들과 더 가까이 있어서 총을 맞았다. 피를 흘렸고, 죽었다. 단 한 발자국 차이. 해일은 고작 한 발자국 때문에 박경선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박경선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무엇을.

 

 

 김해일은 부정하고 있었을까.

 

 


 

 

 왜.

 

 

 해일은 경선이 총에 맞은 이후를 기억하지 못했다. 상처 부위를 지혈했던가. 경선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던가. 아무 말도 못하고 경선의 어깨를 흔들었던가. 대신 단 한 가지 생각만은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내게 왔어야 할 것이 대체 왜. 

 

 죽음은 진부하지도, 제게 오지도 않았다. 해일이 내린 정의는 틀렸고, 그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원칙을 뒤늦게 깨달았다. 

 

 신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경선에게 총을 쏜 사람은 이미 구속되었다. 아마 일평생 바깥 햇볕을 못 볼 것이다. 

 

 남은 사건은 구대영이 종결시켰다. 경선이 쓰러진 직후, 다른 곳에 있었던 대영은 범인들이 미처 수거하지 못한 증거를 발견했다. 덕분에 구속 과정은 수월했다. 

 

 사건은 끝났다. 세상은 여전히 똑같았다. 박경선만 없었다.

 

 


 

 

 언제.

 

 

 소지품을 받았다. 대영이 경선의 아버지가 가져가기 전까지만 성당에 잠시만 맡아줄 수 있냐며 두고 간 것이었다. 휴대폰, 총알에 뚫린 검찰청 신분증, 지갑 등등. 해일은 박스 가장 안쪽에 있는 푸른 묵주를 집어 들었다.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난 후 해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미사를 집전하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밤이 되면 잠을 잤다. 성규와 인경이 다소 불안한 눈빛을 보냈지만 해일은 며칠째 멀쩡한 사람처럼 생활했다. 박경선의 죽음은 성규와 인경에게도 큰 충격이었기 때문에 해일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신 걸까요.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너무 충격이 크셔서 그런 거겠죠.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인경과 성규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슬픔을 혼자만 안고 있지 말라고. 모두가 신부님의 마음을 아니까 아이처럼 울든 슬픔을 토해내든 함께하자고. 해일은 이들의 말에 무슨 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떼었다. 저는 아직 영감님을 보낼 준비가 안 돼서요. 장례 이후 처음으로 박경선에 대해 언급한 것이었다. 

 

 아무 일도 없이 이 주가 지났을 때, 성규와 인경은 김해일이 차라리 이렇게 무뎌지기를 바랐다. 삼 주가 지났을 땐 조금 안심했고 조금 서운했다. 삼 주하고도 5일이 지났을 땐 다시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쌓이고 쌓이다가 한 번에 터지면 어떡하지. 

 

 그리고 그들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신부가 남기고 간 편지 한 장을 읽게 된다.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금방 올 테니 걱정 마세요. -김해일

 

 

 

 


 

 

 

 어디서.

 

 

 그가 도착한 곳은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성당이었다. 무작정 오토바이를 몰고 서쪽을 향해 달려 도착한 장소였다. 성당에 들어온 새하얀 로만칼라를 보고 본당 신부와 수녀는 인사를 하며 어디서 오셨는지를 물었지만 해일은 입술을 깨물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잠시간 머뭇거림 끝에 그는 그저 기도를 드리러 왔다고 답했다.

 

 

 아무도 없는 성전의 가운데 서서 해일은 십자가를 올려다보았다. 천천히 무릎을 꿇고 푸른 바다 빛깔을 지닌 경선의 묵주를 손에 감았다.

 

 

 ...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어떠한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해일은 다시 입을 다물고 차가운 묵주알 하나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손의 온기가 퍼져나가 금세 체온과 비슷해졌고, 그는 그것을 넘기며 다음 묵주알로 손가락을 옮겼다. 이번에는 눈을 감고, 이번에는 숨을 가다듬으며. 계속, 계속 반복했다. 

 

 한 바퀴가 다 돌았을까. 해일은 천천히 눈을 뜨고 십자가를 올려다보았다.

 

 

 

 하나의 영혼이 주님 곁으로 간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간 저는 해선 안 될 짓을 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웃었습니다. 

 

 주변 이들은 차라리 아파하고 울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울기 시작하면 언젠가 그쳐야 하니까요.

 

 

 

 제 이기심에 떠나간 이를 존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제대로 된 기도를 드리려 합니다.

 

 

 

 해일은 숨을 골랐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성전 뒤쪽의 작은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 성전 안에선 들리지 않던 파도 소리가 해일의 귓가에 가득 찼다. 바람에 실려 오는 그 소리를 따라 그는 걸음을 옮겼다. 

 

 부드러운 모래 위를 사박사박 걸었다. 앞에 펼쳐진 것이 바다든 땅이든 상관없다는 듯 계속 수평선만을 보며 걷던 그는 물을 머금어 단단해진 모래가 발밑에 오자 멈추어 섰다. 잠시 뒤에 파도가 발목 아래로 밀려왔으나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영감님.

 

 

 

 영감님.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폰을 제일 먼저 봐요. 

 

 혹시 잠든 사이에 영감님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해서.

 

 

 

 조금 멀리 연수를 간 것 같아요. 영감님 해외 나갔을 때 시차 안 맞는다고 연락 씹고 그랬잖아요. 딱 그때 기분이야. 

 

 한참을 기다려도 답장이 없어. 내가 문자 보냈잖아요. 아무리 여기가 아침이고 거기가 밤이래도 그렇지. 하다못해 이응 하나라도 보내주면 어디 덧나나.

 

 

 

 근데 오늘 아침에는... 갑자기 알겠더라고. 

 

 답장은 절대 오지 않겠구나. 

 

 지금도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은데 

 

 문자 하나만큼은 절대 오지 않겠다 싶더라고.

 

 

 

 그럼 이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영감님이 없다는 사실보다 

 

 죽은 사람이 영감님이란 걸 

 

 받아들일 수 없었나 봐요. 

 

 그게 조금, 

 

 좀 원망스러웠어요. 

 

 나 진짜 나쁘죠.

 

 

 

 죽어야할 건 난데.

 

 

 

 미안해요. 

 

 그동안 모르는 척 해서.

 

 

 

 영감님 불편하고 찝찝한 거 싫어하잖아. 

 

 더는 안 불편하게, 

 

 이제 진짜로... 진짜로 인사할 게요.

 

 

 

 해일은 손에 쥐고 있던 푸른 묵주를 모래 위로 내려놓았다. 편히 쉬어요. 파도가 밀려왔다. 그리고 묵주와 함께 빠져나간다. 파도가 다시 밀려왔다. 묵주는 오지 않았다. 해일은 가슴 앞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주님의 뜻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저의 죄를 밝힙니다. 

 

 삶과 죽음은 모두의 것. 

 

 온전한 저의 것은 오직 신앙심. 

 

 아니. 그조차도 모든 이들의 것.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셀 수 없는 모래알 같은 만물의 섭리를 두려워하지 않겠나이다. 

 

 아버지. 

 

 당신께 

 

 복종합니다.

 

 

 

 영원한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찬양과 감사를 올립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시어 

 

 눈이 먼 저희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구원을 내려주소서. 

 

 그의 영혼을 보살펴주시고, 

 

 그의 가는 길에 빛을 비추어주시고, 

 

 영원한 안식을 내려주소서. 

 

 사랑하는 이들의 따뜻한 숨결을 

 

 그에게 다시 전해주소서.

 

 

 

 김해일의 눈에서 투명한 물이 흘러나왔다. 순수하게 맑은 그것은 바다에 떨어졌고, 빛을 받았다. 

 

 해일은 죽음을 믿지 않았다. 앞으로도 결코 믿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는 물기가 맺힌 손으로 성호를 그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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