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고
카테고리
작성일
2025. 5. 12. 22:03
작성자
흰다리새우

 

 

 경선이 성당을 찾아간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스펙타클한 하루를 보낸 경선은 사람들과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오늘 검찰청에서 있었던 일을 김해일한테 보고도 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집 대신 성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성당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편하게 오세요. 수녀님 말씀대로 언제나 편하게 드나들긴 하다만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가는 건 수직적 사회에 몸 담고 있는 경선에게 예의가 아니었다. 내가 또 이런 건 철저하게 지키지. 뚜벅뚜벅 길을 걸으며 경선은 해일에게 문자를 하나 보냈다. 

 

 - 신부님, 성당이에요? 나 지금 가고 있는데. 

 

 평소 같으면 칼같이 날아왔을 답장이 없었다. 바쁜가? 경선이 깜깜한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가 다시 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전화할 필요는 없지. 바쁜데 괜히 성당에 들어갔다가 방해만 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발걸음을 돌리기엔 경선은 이미 성당 앞에 도착해있었다. 왔는데 그냥 가기도 뭐하고. 잠깐 인사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경선은 일단 조용히 들어가보기로 결정했다.

 

 

 끼이익. 

 

 문을 살포시 열어보니 내부가 조용했다. 불은 꺼져있었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대라서 부엌과 거실에 온통 주황빛이 감돌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가 척 봐도 경선에게 그만 나가라는 축객령을 내리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나 보네. 경선은 뒷걸음질 치며 이만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런데 부엌에 시커먼 건 뭐지. 스쳐가듯 시야에 남은 잔상에 그림자보다 더 어두운 덩어리가 있었다. 덩어리? 경선은 다시 문을 밀어서 고개를 내밀었다. 아, 김해일이다. 해일이 김치냉장고 위에 앉아있었다. 머리는 창문에 기대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로 보아 잠이 든 듯했다. 너무 고요해서 없는 줄 알았네. 경선은 살금살금 들어와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실내화를 신었다. 맨날 저기 앉아있어. 자기가 고양이야 뭐야. 경선이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불투명한 유리로 들어오는 햇빛이 후광처럼 해일의 얼굴 뒤에서 빛났다. 그의 정면에서 가만히 얼굴을 들여보고 있다가 경선은 고개를 돌렸다. 조각상도 아니고 얼굴 감상은 예의가 아니지. 경선은 여전히 고요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해일이 앉은 자리 옆 김치냉장고 위로 다리를 올렸다. 생각외로 높아서 낑낑거리며 올라갔는데, 자리는 의외로 편안했다. 김해일이 괜히 올라가있는 게 아니다 싶었다. 경선은 그처럼 머리를 벽에 기대었다. 그리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그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식탁도 있겠다, 이러면 감상이 아니라 겸상이니까. 

 

 짙은 눈썹부터 오똑한 콧날, 동그란 코끝, 곡선을 그리는 입술, 굵은 턱선, 예쁜 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잘 빚어낸 외모다. 멍하니 보고만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다. 그를 처음 본 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잘생겼다. 그래, 그냥 그렇게 외모만 잘나면 되잖아. 청빈해야 할 신부가 욕심은 많아가지고, 다 가졌네 다 가졌어. 칫- 툴툴거리는 소리가 경선의 입밖으로 나왔다. 소리를 듣고 해일이 미간을 찡그렸다. 어허, 잘생긴 얼굴 찡그리지 말고. 경선은 그의 얼굴에 손을 올려 검지손가락으로 눈썹 사이를 살짝 내리누른다. 찡그린 미간이 펼쳐진다. 경선은 잠시 고민하다가 닿은 손가락을 떼지 않고 얼굴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오똑한 콧날. 동그란 코끝. 곡선을 그리는 입술. 굵은 턱선. 그리고 예쁜 귀. 눈으로 담는 것과 손에 닿는 것은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그저 궁금해서 해봤는데, 하지 말 걸 그랬다. 아니 궁금해도 손을 대면 안 되지. 나 뭐에 홀렸나 봐. 잠시만. 경선은 얼른 손가락을 떼어냈다. 김해일의 색색거리던 숨소리가 달라졌다. 깼구나. 경선은 그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전에 김치냉장고에서 폴짝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아직 감각이 남아있는 손으로 김해일의 머리카락을 잔뜩 헝클어뜨렸다. 

 

 "어우, 뭐야! 뭐, 누구야. 뭐에요, 영감님! 그만!" 

 

 "신부님 탈모에요? 머리카락이 너무 여기저기 붙어있어서 놀랐네." 

 

 "아잇! 진짜. 자는 사람을 이렇게 깨워?" 

 

 "깨워야지 그럼. 불편하지도 않아요? 앉아서 자게." 

 

 해일이 접은 다리를 펼치고 김치냉장고를 내려갔다. 그리고 하품과 함께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기지개를 켠다. 어후, 잘 잤다. 영감님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어쩐 일이긴. 신부님이 시킨 일 때문에 내가 오늘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세히 보고하러 왔죠•••

 

 

 

 

 

 

 

 

 

 

 경선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손끝에 새겨진 해일의 얼굴을 다시 그려본다. 

 

 짙은 눈썹, 오똑한 콧날, 동그란 코끝, 곡선을 그리는 입술, 굵은 턱선, 예쁜 귀. 색색거리는 숨소리. 포근한 향기. 따뜻한 숨결. 

 

 딱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담아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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